몸의 행실을 베어내는 성령의 검
로마서 7:20-23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능동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인 ‘죄의 본성’을 정확히 직시해야 합니다.
죄는 결코 가벼운 도덕적 일탈이나 일회적인 실수가 아닙니다. 바울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사는 죄입니다. (생략)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롬 7:20-23)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제하려고 하는 악한 지배 세력입니다. 죄는 쾌락과 만족을 앞세워 유혹합니다. 우리는 결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히 3:13)라고 엄중히 권면합니다. 우리가 죄를 온전히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공급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죄의 추악함을 깨닫도록 조명해 주시고, 진리를 향한 거룩한 열망을 불어넣으실 때, 우리는 비로소 죄를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철저히 도려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권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몸의 행실을 끊어내려는 성도의 단호한 결단이 결합 될 때 참된 성화가 일어납니다. 구원의 완성을 확신하는 성도라면, 선과 악의 절대적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을 빼어 들어 낡아지는 몸의 악한 행실들을 날마다 예리하게 베어내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는데도, 자신이 자유민이 된 사실을 알지 못해 옛 주인을 두려워하며 종살이를 계속했던 남부의 노예들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새 신분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바울은 우리가 어찌하여 여전히 육신을 따라 살아가느냐고 묻습니다. 죄의 권세는 십자가에서 이미 무너졌고, 우리를 향해 그 어떤 합법적인 권리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은혜 아래서 자유인답게 생명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