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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주일 오전 11:00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3길 27 (부암동) · 02-391-3230

두려움의 종살이에서 건져 낸 자녀의 영

로마서 8:15

바울은 로마서 8장 15절에서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다”라고 선언합니다. 과거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에 짓눌린 종살이의 영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1세기 로마의 노예들이 주인의 채찍을 두려워하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저주에 떨었던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타락한 인간은 영원한 진노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에 질질 끌려 다니는 영적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평안을 주시는 진리의 성령님께서 처음 찾아오실 때,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를 율법 앞으로 이끌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십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그 끝에 기다리는 영원한 형벌이 얼마나 끔찍한지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부드러운 위로자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영적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시며 교만을 무너뜨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요 16: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은 죄인을 철저히 깨우치기 위해서 ‘율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불과 흑암,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압도되어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것처럼, 성령님께서 율법의 엄위한 잣대를 우리 영혼의 내밀한 생각과 동기에 들이대실 때 우리는 처절한 절망을 겪게 됩니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이다”(롬 3:20)라고 단언했듯, 율법은 우리를 변호하는 대신 끊임없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고발하며 영적인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신 기준과 자신의 참담한 실체를 마주한 영혼은 필연적으로 끔찍한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히 2:15)이라고 묘사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은 언제 진노의 벼락이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그 절망에 버려두기 위해 율법을 들이대신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공포와 절망 끝에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을 붙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종살이의 멍에를 꺾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의 영광스러운 자유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